세카이계 베타 서비스 𝑆𝑒𝑘𝑎𝑖𝑘𝑒𝑖 𝐵𝑒𝑡𝑎 𝑆𝑒𝑟𝑣𝑖𝑐𝑒

세카이계 베타 서비스 𝑆𝑒𝑘𝑎𝑖𝑘𝑒𝑖 𝐵𝑒𝑡𝑎 𝑆𝑒𝑟𝑣𝑖𝑐𝑒 (2024, single channel video, 15' 10", color, sound)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 이후, 타인과 가급적 접촉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 되는 상황안에서 우연히 그 기점에 유행이 된 mbti 테스트의 결과에서 “I” 성향을 가진 이들은 적극적으로 방구석을 기점으로 하여 거리두기의 최전선에서 활약하였다. 그들은 기술발전의 과정에서 시장의 요구와 가장 맞닿아 수익을 최대로 낼 수 있었던 키오스크 프로그램과 구조를 양산시켰고, 배달앱의 활성화를 성공시켰다. 그때 당시 카페에서 일하던 나는 키오스크가 들어옴에 따라 직원에 입장에서는 매장 회전율도 빨라지고, 직접 주문을 받으면 생기는 목의 통증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인식했지만, 고연령층에 조작 미숙으로 인해 결국 직원이 주문이 받아야하는 점, 기계 관리라는 단점도 새로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은 직접 주문을 받는 것이 더 빠르게 일처리가 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저 기계는 왜 서있는 것일까?
이와 비슷한 시기에 VR과 메타버스가 4차 산업이라는 것으로 대중과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디어에서는 VR 고글을 쓰고 가상 공간을 돌아다니는 사람의 모습(가상의 모습이 아닌 현실에서 팔을 휘젓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비율이 더 컸다.)을 널리 알리며 근미래의 새로운 생활상으로 제안하기도 했지만, 사실 서브컬쳐안에서는 그 예측 훨씬 이전부터 VR유저들이 VRChat이라는 게임안에서 만나 대화나누는 장소로 기능했다. 그들은 유티니 같은 게임엔진으로 직접 만든 월드와, 아바타를 VRChat에 업로드하고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했다. 그들의 대화에는 거리두기도, 인원 제한도, 마스크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후에는 “버츄얼 유튜버”, “버츄얼 스트리머”라는 것이 등장했다. 2000년대초부터 있었던 인터넷 개인방송의 형태를 사람의 얼굴을 드러내 진행하지 않고, 2D, 3D의 캐릭터의 모습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는 VR을 사용해본 적 없는 일반 시청자들에겐 굉장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우선 버츄얼 스트리머들은 캐릭터와 ‘안의 사람’의 목소리와 어울리는 설정, 일명 “RP(Role Play)”라는 것을 설정해(ex.해적, 악마, 수인, 나이가 0살부터 2000살, 그 이상까지도. 상상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가능하다.) 깊히 몰입하여 수행하는데, 이를 보는 사람 역시 그것에 몰입해야 원만한 시청이 가능하다. 이런 파란 약의 역할극의 세계에서는 현실의 생각과 감정이 섞인 ‘선을 넘는’ 과몰입(빨간 약)에 대해선 참여자 서로의 혐오 발언도 서슴치 않는다. 과몰입을 막는것은 대안세계와 현실의 메타적 자기인식에 있어서 이 상황을 조작하려는 주체로서의 별도의 자기인식이 있다는 감각을 구성한다. 참여자들의 생각과 감정에 조작적으로 개입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쟁은 버츄얼 스트리머의 탄생부터 계속되었다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성장하는 버츄얼 시장과 수익성이 분쟁을 완화시키고 하나의 장르로서 완벽히 인터넷 방송 시장에 버츄얼 스트리머를 안착시켰다.
귀여운 여자친구를 원한다귀여운 여자친구가 된다.” 큐트 가속주의(에이미 아일랜드, 마야 B. 크로닉 지음, 윤태균 옮김, 40p)
이후에는 버츄얼 스트리머들이 자신의 얼굴은 감췄지만 목소리는 드러냈던 것에서 더 나아가 목소리마저 음성 변조 프로그램으로 숨기고 활동하는 “공격헬기”들이 등장했다. 그들이 헬기로 불리는 이유는 “I Sexually Identify as an Attack Helicopter”라는 인터넷 밈에서 유래했는데, 본인의 성 정체성이 ‘공격헬기’라고 주장하는 밈이다. 그것은 서구권에서 트랜스젠더 및 젠더 퀴어를 포함한 성 정체성에 대한 논의, 즉 젠더 담론이 이루어지면서 수십 개가 넘는 수많은 종류의 성 정체성이 등장했고, 2010년대 중후반경에는 이를 서구사회가 제도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는데, 공격헬기는 이런 성 정체성 관련 젠더 이야기들을 비꼬기위해 만들어진 밈이다. 한국의 인터넷 방송계에서는 이를 역으로 자신의 성별을 숨기고 싶을 때 사용하는 밈이 되었으며 자신의 종족, 나이도 바꿔온 그들이 바꾸지 못했던 하나, 성별도 바꾸기 시작한 것이며 이제는 앞서 서술한 과정으로 파란 약의 세계에 적응하기 시작한 시청자들이 그것을 용인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2025년에 들어서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기존에 남성의 외형, 남성의 목소리로 방송중이던 남성 버츄얼 스트리머들이 여성의 모습을 한 아바타에 남성의 목소리로 방송을 진행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이는 ‘버미육(츄얼 소녀의 체를 입은 아저씨)’이라고 불리며, 남성이지만 여성의 아바타를 내세워 시청자들을 속였던 ‘노라캣 사건’ 이후, 한번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적이 없었는데, 파란 약의 세계에 적응한 시청자들이 스트리머와 쌓아온 유대감을 바탕으로한 적극적인 전긍정(버츄얼 스트리머가 무엇을 하든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해주는 것,버츄얼 용어)으로 장르로서의 버미육 방송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약 10년 사이의 변화들은 결국 한가지로 귀결된다.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싶지 않다.” 즉, 상대방의 정체가 무엇이든 대면하지 않는다면, 나의 욕구와 요구가 충족되다면, 상대가 기계라고 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엇이든지 가능한 시대속에서 2021년, 중국에서 버츄얼 스트리머에 대한 규제가 대폭 강화되고, 일정 규모 이상인 채널은 개인 정보까지 공개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규제가 발표된다. 이를 통해 버츄얼 스트리머들의 신상과 얼굴 사진이 인터넷 상에 공개되었다. 서구사회가 수 많은 ‘성 정체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했던 것과 다르게 ‘버츄얼 정체성’을 제도적으로 말살한 사건이 되었다.
나는 2000년대초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유행했던 ‘세카이계’의 형식을 빌려 현재 가상세계의 모습을 은유한다.
이러한 관측에 결과에서 난 1차적으로 이를 기술과 사회의 자연적인 변화의 결과로 봐야하는지, 이러한 결과를 부정하고 과거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의 회귀를 주장해야하는지 고민해보았지만, 내린 결론은 견고히 만들어진 듯한 이 세계가 과연 망할 수 있을까하는 미래를 예상해보면서 동시에 ‘안의 사람’이 공개되어 버린 중국의 버츄얼 스트리머들의 얼굴을 영원히 잊어버릴 수 있도록 하는 제의를 시도한다.
사진과 영상을 매체로 하는 작가로서 기록한 ‘사람’을 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지만, 사람을 기록하는 것은 늘 망설여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넷상에서 버츄얼 캐릭터를 기록하는 것의 장점을 꼽으라면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의 얼굴도 보지 않았고, 내밀한 본인의 이야기도 오고갔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로 창조된듯한 이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은 충분히 가벼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가 된 서로가, 혹은 캐릭터와 시청자가 유대하며 만들어 온 이 ‘세계’를 공고히 하겠다는, 혹은 이 세계가 망하더라도 절대 잊지 않겠다는 어떤 ‘의지’가 보였다. 그들 사이에 주고 받은 중요한 어떤 것은 ‘세계’라는 겉모습이 아닌 그 안에서 작용되는 어떤 마음, 영원할 데이터들, 반복되는 재생산의 과정, 그런 것들이었다. 철학과 인문학적인 이야기는 없었지만, 유머와 위트가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힘이 되었다. 또한 이는 정체성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생긴 모습과 성향을 초월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목도할 수 있었다.
나의 삶에서 내가 가지는 작은 재미 중 하나는 나의 이름이 성별이 모호한 중의적인 이름이어서 가끔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를 여성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모습을 공개하는 것으로 너무나 쉽게 반대의 사실이 들통나버린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오해가 너무 즐겁다. 이번 작업안에서 나는 공격헬기로서 여성의 모습을 한 버츄얼 캐릭터가 된다. 익명의 ‘나와 너’의 관계성이 사실은 공고하지 못한 ‘베타 서비스’처럼 한순간에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드러내면서 이 ‘공고하지 못함’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어야 하며(이름에 대한 오해앞에 내가 스스로를 내보인 것처럼), 국가, 플랫폼, 단체에 의한 것이 되면 안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나는 중국의 스트리머들의 얼굴을 내보임으로 영원히 내보여지지 않기를 희망한다. 모자이크 된 이미지의 생산으로 원본이 사라지기를, 감춰지기를 바라는 아이같은 마음으로.
가상의 공간과 증강된 현실, 그리고 증강된 인류라는 담론이 형성되고 이야기되는 현재, 작가는 가상의 공간도 버츄얼 캐릭터도 현실의 공간과 인류를 대체하는 대안적인 것이 아니라 가상만의 특성과 규칙이 있고, 그에 따른 나름대로의 소통과 상호작용 방식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 인식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효과적인 이해의 방식은 아마 새로운 기술에 놀라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가지고 놀 수 있게 만드는지가 먼저일 것이다. 우리는 키오스크를 익히고 다뤄볼 시간이 과연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