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선 (독립 큐레이터)
《정희수: 태양빛이 태워가는》이 열리는 전시공간 소현문은 수원의 주택지구에 위치하지만, 관람객들에게는 관광지와 다름없이 찾아가야 할 어떤 비일상이다. 그렇기에 전시를 보러 가는 길은, 작가가 〈영원히 사는 소년과 기억하는 행동〉과 〈가이드와 관광객의 동굴 산책〉을 촬영하고자 오키나와 동굴로 걷는 길과 겹쳐진다. 탁 트인 하늘과 풀과 나무로 가득한 언덕 너머 좁은 길을 파고들어 목적지로 나아가지만 유사한 풍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키나와에서 정희수는 자연을 이어가며 여전히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건너 동굴에 다다른다. 반면 수원에서 관람객은 푸르른 연무대를 넘어서 아스팔트 위로 흘러가 다닥다닥 붙은 시멘트 건물들로 둘러싸인 전시공간에 도착한다. 작가는 대체 어떤 연유로 교차하듯 달라지는 길들을 연결시킨 걸까.
あの窓から見るこの島はいったいどんな色? (주석 1)
(저 창문으로 보이는 이 섬은 대체 어떤 색일까?)
소현문 앞에 서면 깨끗하게 투과되는 창 너머 말끔하게 걸린 사각 화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들도 햇빛을 가득 머금어 청량하게 빛나는 풍경들을 비추어, 깨끗한 하얀 벽과 정갈한 원목 액자 프레임에 잘 어우러진다. 그러나 정희수가 담아내는 오키나와의 색은 모호하다. 으레 떠올리는 통념들이 있다. 푸르른 하늘과 초록빛 자연, 붉은 히비스커스. 이렇게 특색 지어진 자연과 어우러지는 미국의 활기 넘치는 푸르고 붉고 하얀 색, 혹은 옛 류큐 왕국의 조각과 건축에 담긴 이국적이고 온화한 색. 작가의 사진에서도 오키나와 낭만들은 여전하다. 하지만 전시장 안에 들어와 작품을 가까이 들여다본다면 관광지에서 딱히 눈에 들이고 싶지 않을 색채들까지 발견하게 된다.
“수원이야말로 녹색의 에메랄드에 묻힌 산자수명의 고도이다.” (주석 2) 1940년, 『모던일본』 조선판에 수록된 기사에서 수원을 묘사한 문장이다. 반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이 도시는 더 이상 녹색으로만 가득한 고도가 아니다. 수원은 중심지 경성에 인근하면서도 조선 왕조의 전통이 짙게 남았기에, 제국의 관광지로 기능하다 해방 이후 미군과 한국이 주둔하는 공군기지와 IT와 신에너지를 주도하는 대기업 거점지로 자리잡아갔다.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의 유산이라는 이국적인 남방 풍광으로 낭만화된 이래, 관광지로서 면모는 더욱 복합적으로 확장되어왔다. 1972년 일본 본토 복귀 이후 전쟁참상을 추모하는 여러 평화기념물과 점령기 잔재로 남은 미국 문화, 열대를 즐기는 자연 리조트들이 더해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미군의 관리를 받은 끝에 다시 일본에 편입된 오키나와와 다르게, 해방을 맞이한 한국에서 수원은 여러 산업들이 발전하며 관광지로서 색채는 상대적으로 옅어졌다. 그럼에도 수원이 세계에 처음 지명을 새겨 넣었던 정체성은 제국의 관광명소였기에, 이곳에서 나고 자라 작가로 활동하는 정희수가 관광객으로서 오키나와를 찾았을 때 개인의 경험과 고향의 기억이 얽혀 섬을 받아들이는 건 운명 같은 흐름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키나와를 걸어다니며 평범한 풍경과 악수를 나눴다. 오키나와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내가 행해야 할 제일 처음의 행동이었다.”(주석 3) 자신이 기록한 촬영물로 사람들이 오카나와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한편 그곳의 수많은 기념탑 사이에서 기록하고 연대하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정희수는 이렇게 포착하기 시작했다. 도로와 건물, 나무나 주차장이 담긴 〈외야〉 연작들은 작가에게 ‘평범한’ 풍경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평범하다는 색 다르지 않다는 의미라, 〈외야〉에 담긴 오키나와 풍경들은 작가가 사는 일상과 크게 어색하지 않게 겹쳐진다. 작가는 물론 수원에 사는 사람이라면 고궁을 둘러싸고 우거진 녹음도, 군공항을 길게 잇는 펜스와 철조망을 뚫고 나온 색색의 꽃들도 낡고 깨끗한 건물 너머 재개발로 덮인 공사현장도 모두 익숙한 도시풍경이다. 그 사이로 언뜻언뜻 포착되는 낯선 양식들은 〈헤어 찰리 브라운〉, 〈교우〉, 〈퇴적〉의 오키나와 레트로로 이어지는데, 모습은 다르지만 방식은 수원에서(나아가 전통을 머금은 한국 도시 어디에서나) 공공 혹은 사적 단위로 전통과 근대, 현재를 혼합해 지역만의 특색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온전히 낯설지는 않다. 이미 오키나와를 관광했든 작가의 작업으로 처음 오키나와를 만나든, 관람객은 이미 교차하는 역사를 품고 살아왔으므로 전시공간에서 일상적이고 낯선 풍경과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을 분리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기에 〈투어리스트 러브 플래시라이트〉와 〈가이드와 관광객의 동굴 산책〉을 관람하며 낯선 타국의 분리된 일로만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아마 작가가 관광지로 선별되지 못하고 방치된 공간에 더욱 마음을 쓰며 사촌동생을 향한, 흐려질지 언정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묶어내는 계기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수원은 조선의 전통이 뿌리내리고 혁신에너지를 내세우는 대기업으로 상징되는 한편 형무소 재소자 학살이나 물고기 집단 폐사, 군공항 소음 문제 등 역사로부터 거슬러 온 소란들이 이어지는 도시다. 그렇기에 동굴과 함께 묻혀져 버린 사건들은 관광지 오키나와의 매끄러운 면면들에 밀려나 있기에 더욱 예민하게 감각된다. 다른 경험이지만 공유될 수밖에 없는 상처들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전시장 곳곳에 더욱 깊이 들어가 오키나와의 상흔을 자세히 살펴보게 한다. 산 위에 올려진 돌탑을 보고 묵념하듯 〈종(縱)으로 흐르는 횡(橫)으로 하나〉 연작을 보며 돌을 쌓아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관광지에서라면 들춰보고 지나갈 〈구 해군사령부호 팜플렛〉을 집어들고 그보다 한층 더 높이 놓인 〈4GB의 묘, 18.1MB의 자리〉라고 이름 붙여진 SD 메모리카드를 인식한 뒤 다시 〈영원히 사는 소년과 기억하는 행동〉을 보게 된다.
繰り返す悲しみは島渡る波のよう (주석 4)
(반복되는 슬픔은 섬을 건너는 파도와 같아)
〈영원히 사는 소년과 기억하는 행동〉은 출입구 앞에서 반복해서 재생된다. 공간을 한 바퀴 둘러 걸으며 관람객은 이 작품으로 전시를 시작하고 마무리 짓는다. 정희수는 관광지로 거듭나지 못한 동굴을 거닐며 작품 곳곳에서 그 앞을 지키는 승입석을 담아내는데, 〈영원히 사는 소년과 기억하는 행동〉은 출발점이자 종점으로서 모든 작품들을 지탱하고 승입석 같기도 그 너머 묘비석 같기도 하다. 비치된 의자에 앉든 서 있든 내려 볼 수밖에 없는 곳에 위치한 작품은 빛나는 풍경을 찬란히 부숴내며 바래진 기억을 묵념한다.
작가는 “오키나와로 향한다는 것. 그곳에서 카메라로 풍경을 담아내는 것. 그것을 전시하는 것. 나는 무엇과 연대하는가” 고민하고, 후텐마에서 비행기 이륙을 기다리며 커다란 카메라를 든 (관광객임이 분명한) 세 남자와 (작가이자 관광객이기도 한) 자신의 도덕성을 비교한다. 섬세하고 예민하게까지 느껴지는 독백은 고요한 발걸음과 노이즈 섞인 바람소리, 우울하고 청량한 멜로디가 뒤섞여 한껏 더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장면이 바뀌고 오키나와 도로로 카메라를 돌려 “예. 이곳은 카데나 비행장 입구이고요. 이 비행장의 한 바퀴를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의외로 온화하다. 관광객이 되어 친절한 사람들과 만나 내딛는 땅에 가까워지고 선량하게 모든 걸 받아들이면서도, 바라보는 기록에서 누락되고 가려진 상실을 발견한 끝에 작가는 사촌동생의 죽음과 오키나와의 죽음에 얽매여 부유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작가는 죽음을 다루면서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건 죽음 자체가 아니라 망자들이 남기고 간 기억들이다. 동굴 앞에서 햇빛을 머금고 온화한 표정으로 기도하는 조각, 크레파스로 태양과 달을 그리는 작은 손. 관람객이 흔들리는 화면 사이로 만나는 장면들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게 하는 슬픔 보다는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사랑스러움이기에 더욱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황량한 바다 앞에서 그는 비명을 담아내지 못해 홀로 고뇌한다. 하지만 비행장 주위를 걷고, 철조망 풍경과 버려진 동굴을 빠르게 포착하며 “나는 무엇을 압축했을까?” “사람이 죽었는데 영정사진부터 챙기는 마음은 뭘까” 되뇌이면 견딜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올 텐데도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리는 마음은 선명하게도 다정함이다.
退屈でたまらなかった 島唄が響いた
鮮やかによみがえる あなたと過ごした日々は
柔らかな愛しさでこの胸を突き破り (주석 5)
(지루하고 견딜 수 없었던 섬 노래가 울렸다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당신과 지냈던 날들은
부드러운 사랑으로 가슴을 후벼파며)
정희수의 사진과 영상은 밝은 태양빛을 머금고 맑고 청량하게 오키나와 풍경을 빛낸다. 반짝거리는 이미지 사이로 죽음은 언뜻 증발해버린 듯하지만, 타고 남은 재처럼 작품 곳곳에 자리한다. 어쩌면 여행객이기도 한 관람객은 전시공간에서 “평범”함과 낯섦을 오가는 해사한 사진들을 바라보며 그들 자신이 서 있는 수원과 작가가 서 있던 오키나와 사이의 기시감을 느낀다. 그리고 “혼이여 혼이여 돌아오라 まぶやーまぶやーうーてぃくーよ”라고 오키나와어로 전시 참여자들이 읊는 사운드, 〈마부야 마부야 우티쿠요〉가 울려퍼질 때마다 스산한 마음으로 귀를 열고 작품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상실 후 혼을 부르는 애도의 언어와 전쟁의 학살을 겪은 증언, 친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기억하고 우연히 마음에 들어온 오키나와 동굴의 서사와 연대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청년의 독백. 그 이야기들 사이로 관람객은 전시가 보여주는 죽음들을 추모하고,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끌려 올 수밖에 없는 죽음들, 이를테면 관람객 개개인이 겪은 아픔과 전시가 열렸던 도시 수원에서 벌어졌던 여러 죽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동굴처럼 깊이 묻힌 상흔을 꺼내는 것들이 애틋한 멜로디와 상냥한 목소리, 청명한 풍경들임을 상기하게 된다. 결국 이 전시는 뜨겁게 타오르지만 따스하게 내리쬐는 태양빛처럼 엷지만 선명한 편린들을 한데 묶어 다른 이들의 죽음을 함께 기리고 돌보게 하는 순간을 마련한다. 관람객에게 그러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작가이자 관광객인 정희수의 다정함에서 비롯된다. “부드러운 사랑으로 가슴을 후벼파며”
각주
1. Awich, 「TSUBASA feat. Yomi Jah」, 0000, 도쿄: Universal J 가사에서 인용.
2. 「조선도시소식」, 홍선영·박미경·채영님·윤소영·옮김, 『일본잡지 모던 일본과 조선 1940: 완역 <모던일본> 조선판 1940년』, 어문학사: 서울, 2009, 402.
3. 정희수 작가노트.
4. ザ・ブーム, 「島唄」, 도쿄: 소니 뮤직 엔터테이먼트 재팬, 1992 가사에서 인용.
5. BEGIN, 「三線の花」, 2006, 도쿄: 임페리얼 레코드, 가사 한국어 번역은 정희수의 영상작업 〈영원히 사는 소년과 기억하는 행동〉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