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여기 없다》 전시서문 - 이근정 (2020)

- 프로젝트룸 신포 큐레이터 이근정
‘모양’ , ‘ 형상’ 이라는 뜻을 지닌 한자 상像은 사람 인人 변에 코끼리 상象 자로 이루어졌다. 자전에서는 이 글자의 유래를 이렇게 설명한다. 고대 중국에는 황허 유역까지 코끼리가 서식했다. 그러다가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어 기후가 변하고 인구가 늘면서 코끼리가 사라지고, 후대인은 입으로 전하는 코끼리의 모습을 상상想像으로 그렸다. <코끼리는 여기 없다>는 이미지의 불완전함, 나아가 이미지의 불능성을 생각하는 전시다. 코끼리를 보지 못하고 정신 작용의 힘으로 그린 코끼리가 그렇듯이, 이미지 속에 실제는 없다. 네 작가는 조작되고 확산하는 디지털 이미지의 폭주를 응시하면서 그 안에서 움트는 새로운 존재와 인식의 가능성을 더듬는다.
■ 권기태 _ Telescope Image
이 푸르뎅뎅한 지형은 어느 곳을 가리키는가? 산과 절벽과 바다와 모래밭은 그 형체는 어렴풋이 있되 자신을 명백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작가는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이 이미지들을 ‘ 발견’ 했다. 망원경의 LCD 모니터에 비친 북한 땅, 그것은 국가가 결정하고 국가가 허락한 이미지였다. 확대하면 할수록 이미지는 흐려지고 보는 사람은 그 지대에 끝내 도달할 수 없다.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시스템이 통제하고 관리하는 이미지를 레퍼런스로 만드는 것이다. 찍힌 것을 찍는 행위로 작가는 이미지의 형성과 전달에 얽힌 의미화 과정에 질문을 던진다.
■ 이하늘 _ Stranger
정면을 향한 시선에서 긴장감이 드러나는 인물들은 작가에게나 관람객에게나 말 그대로 낯선 사람이다. 작가는 길에서 만난 행인을 즉석에서 섭외해 친밀성을 배제한 포트레이트에 도전했다. 처음 만난 사진가의 제안을 받아 카메라 앞에 선 인물은 잠시의 불안과 어색한 기분을 노출하고, 이들의 표정과 제스처는 <스트레인저>의 아카이브가 된다. 인물의 내면이 아니라 외면이 이 초상들의 중심이다.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인물들의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작가는 사진가의 주체성을 해체하고, 이미지의 속성이 가장 얇은 꺼풀인 표면에 있음을 암시한다.
■ 박다빈 _ Person.jpg / Find Someone
생성 모델과 판별 모델이 대립하고 경쟁하면서 유사품이 만들어진다. 작가는 딥러닝 프로그램인 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이 생성한 ‘사람’ 이미지를 내세워 인간에 대해 묻는다. 사람 형상을 띠고 있으나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인 Person.jpg는 픽셀, 바이트, dpi 같은 단위로 정의된다. 그 옆에는 데이터 오류가 만들어낸 피조물이 있다. 둘 다 실재하지 않지만 하나는 사람 형상이고, 하나는 사람이 되려다 실패한 괴생물체의 형상이다. 오류와 실수에 주목하면서 작가는 진짜 인간과 인간 이미지를 가르는 것은 ‘ 행위’ 라는 가설에 도달한다.
■ 정희수 _ 앵무 / 빠른 호흡
도시와 인터체인지, 불타버린 산을 부감 숏으로 찍은 영상 위에 앵무새를 비롯한 디지털 이미지들이 점점이 겹쳐지는 <앵무>는 이상의 시 <오감도> 6호에서 빌려온 내레이션과 더불어 대칭의 부정 구조를 구축한다. “난 내 이미지가 가짜이길 바라요.” <빠른 호흡>의 이 선언은 ‘원본’이라는 가치를 잃은 대신 접근성과 확산성으로 힘을 얻는 디지털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다. 작가는 이미지의 실체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궤도를 통과하면서 오늘날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유통되고 인식되는 이미지가 배태한 가능성을 조심스레 두드린다.